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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LINE에 입사하게 되었나 - (1) 오만과 편견과 방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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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들어가기에 앞서

글을 쓴다고 다짐한지 1달이 꽤 넘었다. 그 동안 더 바쁘기도 했지만, 제일 큰 건 나 자신이 너무나 귀찮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에 나는 기차에 몸을 싣고 있다. 흐르듯 일렁이는 도심의 불빛들과, 세 시간여만의 텅 빈 시간이 주어져사야 결국 이 곳으로 돌아왔다.

짧다면 짧은 글이 되리라 생각하지만, 우선 이 독백의 첫 장을 넘어서보자.

 

갑자기 경쟁사 로고가? 싶지만 이 얘기를 빼놓을 순 없었다.

 

 

오만과 방심

22년의 겨울에, 나는 꽤 자신감에 차 있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결국에 졸업논문 심사를 통과했고, 단 한 군데 지원한 카카오에서는 좋은 소식만을 들려주었다. 1차 코딩테스트? 그 동안 조금씩 준비해서 여유롭게 통과했다(고 생각했다). 2차 코딩테스트에선 API를 만들어 점수로 다른 경쟁자와 대결하는 방식이었다. 운 좋게도 내 풀이법이 효과가 있었는지 TOP 100 안에 들었고, 붙을 거라고 자신했다. 그리고 그 예감은 현실로 돌아왔다. 1차 면접은 긴가민가했지만, 그래도 그 문턱도 어떻게든 넘었다. 나는 거칠 게 없었던 셈이다. 카카오의 문은 점점 내게 활짝 열리는 듯 했다.

이 자그마한 성공이, 돌이켜보면 내 비극의 시작이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위험신호는 여럿 있었다.

졸업논문 통과 전에는 졸업 필수 강의를 놓쳤고, 교수님께 사정사정해서야 겨우 수강할 수 있었다. 졸업 요건이었던 토익 영어 성적은 8월까지도 따 두지도 않았다. 제출 기한을 확인하지 않은 탓에, 새벽에 뒤늦게 공지를 확인하고 소리지르며 발을 동동 굴렀다. (아마 그 때 옆집 누군가는 비명소리에 잠에서 깼을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최후에는 2주간의 벼락치기와 마지막 교내 시험으로 어떻게든 점수를 제출했다.

졸업논문도 마찬가지였는데, 마지막까지 주제도 정하지 못하고 갈피를 잡지 못했었다. 결국 시간에 쫓기다 못해, 내 기억의 창고 한 구석에 방치된 컨셉을 꺼내왔다. 어떻게든 실험 결과를 만들어냈고 그걸 얼기설기 묶어 논문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내는 것까지 해냈다.

단 하나라도, 조금이라도 운이 좋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졸업은 물건너가고, 최소 6개월은 더 다녔어야 하는 셈이었다. 하지만 운은 나의 편이었다. 덜렁거리고 대충대충인 성정은 자그마한 성공에 가려져왔다.

카카오 1차 면접때도 나는 내 생각보다 실수가 많았고 준비되지 않았다. 전공 지식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은 겨우겨우 쳐냈고, 너무 긴장한 나머지 하나를 묻는 질문에 둘을 대답하기도 했다. 면접관들 눈에 나는 말더듬는 소심한 인간으로 비쳤을 것이다. 하지만 또 운이 좋았다. 비극적이게도 또다른 통과는 내게 이 위험 신호를 전부 가려버렸다. 나는 내가 잘 해내고 있다고,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에 미리 만나는 카카오 행사를 열었다. 1차 합격자 분들을 온라인으로 모아 주최했었는데, 카카오의 문화와 색채를 소개하는 행사였다. 각 부서의 개발자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경험을 이야기하고, 카카오만의 복지와 혜택은 어떤지 노트북을 통해 들으면서 - 내게 마치 벌써 합격한 듯한 착각을 불어넣었다. 내 오만의 풍선에 헛바람이 들이찼다.

 

이 모든 오만과 편견은 2차 면접에서 처음으로 깨지기 시작했다

흔히들 면접때 준비한다는 예상 질문과 답변 작성하기, 1차 면접에 대한 복기, 면접에 대한 리허설. 하나도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만약, 진짜 만약에 이런 상황에서 합격까지 받았다면 내 착각은 더 단단해졌을 것이고, 언젠가의 인생이 더욱 꼬였을 지도 모르겠다. 내가 알기로, 2차 면접은 (만약 합격해서 일하게 된다면 직속 상관이 될) 관리직 및 임원분이 직접 참여하는 자리였다. 그들 눈의 나는 운 좋게 통과한 허풍선이 애송이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봐 오며 쌓아올린 통찰력은 절대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내 얄팍한 언동으로 가려진 단점들은 여지없이 드러났고, 이 실수를 만화히기 위해 더 큰 실수를 만들어냈다. 처음으로 내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벗겨지는 기분이었다. 내 지금까지 인생이 만들어낸 게으름과 덜렁거림이 처음으로 진짜 발목을 잡은 상황이었다.

(그 때 당시에는 2차 면접도 화상으로 진행했었다) 화상 회의장을 나오면서, 그래도 어쨌건 해냈거니 생각했다. 또 운이 나의 편이 되리라, 그래서 카카오 개발자로 인생의 새 장을 써내려가리라 위로하긴 했다. 나중에 인사팀에서 전화도 오더라. 3월부터 졸업이 확실하냐고, 근무 가능하시냐고. 나는 이 모든 시그널이 합격으로 이어지는 증거라고,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앞으로 수없이 보게 될 불합격 통지서들

 

그 결과는 보시다시피. 그리고 결말을 알다시피 불합격으로 다가왔다. 조금 성나긴 했다. 그 동안의 기대감이 와르르 무너진 셈이었으니까. 그 동안 카카오 합격자들 수기도 살펴보고, 이미 라인에 다니는 친구와 농담으로 치고받는 상상도 했었는데.

하지만 내겐 운 좋게도 수많은 친구들과 동료들, 조언을 아끼지 않는 어른들이 있었다. 그들의 위로와 성원에 나는 우울감을 떨쳐냈다. (너무도 감사한 분들이다) 허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 때 더 절망하고 좌절했어야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야 더 진심으로, 악착같이 달려들어 좋은 결과를 냈을 테니까. 유감스럽지만 지금의 취업 시장은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야생이었다.

 

그리고 편견

사실 나도 그렇게까지 바보는 아니었기에, 바로 다음 수를 위해 복기를 진행했었다. 나는 내가 실무에 대한 경험이 없었기에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그 때까지의 내가 가지지 못한 게 바로 그 실제 프로젝트에 대한 경험이었으니까. 그래서 한 선택이, 부트캠프를 신청한 것이었다.

부트캠프를 흉보거나, 욕하려는 뜻이 아님을 미리 밝혀 둔다. 내 생각에 이런 부트캠프는 비개발자와 신입 개발자에게 훌륭한 기회의 장이 된다고 본다. 실무자들, 그리고 실무자 출신의 강사들과 경험을 얻을 수 있는 건 당연하고, 기본이 되는 기술과 정보들을 빠르게 배울 수 있는 수단이다. 준비된 취준생들에게 충분히 하나의 무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부트캠프는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곳은 전혀 아니다. 지금의 나는 안다. 비영리적이고 제약 조건 없이 개발을 진행하는 프로젝트와, 실제 환경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결이 많이 다르다. 번지수를 잘못 찾았지. 하지만 이런 경험이 없는 나는 부트캠프에서의 프로젝트가 실무 경험에 대응된다고 보았다.

 

실무 경험을 논한다면, 오히려 다른 회사에 잠깐이라도 다녀보는 게 더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게는 편견이 있었다. 대학 졸업자들이 흔히 갖는, 성공한 인생에 대한 편견. 빠르게 복지 좋고 월급 좋은 회사에 취직할 수 있다는 편견. 그 편견이 내 눈과 귀를 다시 막았다. 조금이라도 발빠르게 현장에 뛰어들기보다는, 좀 더 편안하게 부트캠프를 다니며 공부를 하고 싶었나보다.

그 때의 나는 자신이 있었다. 내년 상반기에 취업하면 부트캠프도 도중에 관둬야하나, 같이 다니는 사람들 머쓱해지게. 하고 여자친구와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그래도 카카오도 최종 문턱까지 갔으니까. 부트캠프를 신청한 3월까지는 잠깐의 휴식이라고 생각했고, 그 다음에 차근차근 상반기 공채들을 넣어보면 되겠다 싶었다.

어쨌든 모아둔 돈이 있었고, 그 돈으로 버텨나가며 취업에 도전해봐도 될 터였다. 아르바이트로 시간을 뺏기느니 취업에 전념해서 좋은 결과를 얻어 보자. 그렇게도 생각했다. 일말의 현실감각도 아직은 있어서, 꽤나 장기전이 될 걸 고려했다. 국민취업제도나 다른 지원금도 여럿 알아보고 신청했었다.

 

그 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그 장기전의 진짜 의미를. 얼마나 사람의 영혼을 마르게 하는지를.

 

....(2) 부트캠프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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